1편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스타트업 윈터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알아봤습니다. 펀딩의 감소, 스타트업들의 스캔들, 그리고 유니콘들의 주가 폭락이 연쇄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스타트업 윈터를 뼈까지 시린 겨울로 만들어버렸죠.
이번 편에서는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이 사건들을 보려고 합니다. 각각의 사건들은 상관관계에 있기도 하고 인과 관계에 있기도 한 만큼 전체적인 뷰로 보면 좀 더 정확히 이해가 됩니다. 타임라인부터 살펴보죠.
4. 인과관계 분석: 명치는 누가 때렸나?
펀딩 감소 이후 유니콘들의 몰락과 스캔들들은 개별 사건이 아닙니다. 펀딩의 감소가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창업자 사이에 만연했던 회계조작과 횡령을 드러나게 하고, 각각의 사건들이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며 투자 감소의 연쇄작용을 일으켰습니다.
하나 하나 뜯어보죠.
이슈 1: 저금리 시즌 종료와 유동성 경직
1편에서 언급했듯 2021년까지 글로벌 저금리 환경에서 벤처캐피털 자금이 풍부하게 동남아로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러나 2022년부터 미국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시작되며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고금리 환경에서 리스크 자산인 스타트업 투자 매력이 급감했고, 글로벌 LP들이 급격하게 신흥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까지는 그래도 여전히 2021년을 예외적인 상황으로 보면 증가추세로 볼 수 있었으나, 2023년 그 추세도 명확하게 꺾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슈 2: 하이퍼그로스 패러다임의 종료
인도네시아 유니콘들은 여느 스타트업들이 그렇듯 수익성보다 성장을 최우선시했습니다. Bukalapak, GoTo, Tokopedia 모두 대규모 프로모션과 보조금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전략을 썼죠. 가격에 민감한 인도네시아 특성상 쿠폰과 할인 전쟁은 시장점유율 유지/확장을 위해서는 더욱 당연한 수단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모델이 외부 자금이 마를 때부터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그런 상황이 와버렸다는 것입니다.
GoTo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2022년 순손실 Rp 40조는 대부분 드라이버 인센티브와 마케팅 비용에서 발생했습니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비용 절감이 불가피해졌고, 이는 대규모 해고와 서비스 축소로 이어졌습니다. 딜리버리 히어로가 배민 베트남을 포기한 이유도, GoTo가 결국 Grab에 매각절차를 밟고 있는 이유도 다 이 때문입니다.
이슈 3: 안타까운 상장 타이밍
Bukalapak과 GoTo는 2021-2022년 IPO 붐을 타고 더 큰 자본 확보를 통한 빠른 성장을 위해 상장했습니다. 상장 당시에는 호재였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습니다. 상장사는 분기별 실적 발표로 적자 규모가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여러 차례의 투자를 거치면서 지분 희석이 되기 때문에, GoTo의 경우에도 우호지분을 긁어 모아도 20%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회사는 더 볼드한 전략을 취하는게 어려워집니다. 보수적인 투자자들은 손실 최소화를 위해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먼저 유동화하려고 하기에 경쟁이 치열한 분야의 사업은 더 매력도를 잃기 전에 적당한 가격에 매각하여 자본을 회수하려고 합니다.
이런 전반적인 모습들은 인도네시아의 자본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죠.
이슈 4: 선한 기업의 탈을 쓴 스타트업들의 스캔들
1편에서 다뤘던 스타트업 스캔들들이 더 충격적이었던 점은 이 스캔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삶을 개선한다는 소셜 미션을 강조하던 스타트업들이었다는 점입니다. eFishery와 TaniFund는 각각 어촌/농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eFishery: 식량문제 해결, 어촌 소득 개선,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완화와 같은 메세지 내세움.
TaniFund(Tanihub): 소농의 금융접근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등 Social Imapct를 창출하는 P2P Lending Company로 포지셔닝.
특히 가장 큰 규모인 스캔들이었던 eFishery는 어촌의 문제를 디지털로 해결하는 동시에 사회적 불균형을 해결하고, 동시에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too noble to fail’하다고 평가될 정도의 스타트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누구보다 큰 규모의 매출 부풀리기와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체계적인 조작이 드러나면서 창업자의 비전과 미션에 투자하는 벤처투자업계의 인도네시아 창업자들에 대한 신뢰도, 그리고 이런 회계부정을 파악하지 못한 대형 투자자들에 대한 신뢰도가 모두 무너져내렸습니다.
명치를 때린 놈은 확실히 eFishery입니다.
이슈 5: 경쟁 환경의 악화
Shopee(Sea Limited), Lazada(Alibaba), 그리고 TikTok Shop의 공격적 진출로 인도네시아 이커머스 시장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졌습니다. 특히 TikTok Shop은 라이브커머스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기존 플레이어들의 파이를 빼앗아 갔습니다.
금전적 투자자에 기대던 Bukalapak과 Tokopedia는 유동성 경직으로 자금력이 부족해지자 이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Bukalapak은 결국 이커머스를 포기했고, Tokopedia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자였던 TikTok에 매각됐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TikTok Shop 죽이기가 Tokopedia를 살린 셈이죠
5. 구조적 원인: 왜 이 지경까지 왔나
느슨한 실사(Due Diligence)
2021년 유례 없는 투자 호황기, 경쟁이 치열해지며 투자자들에게는 실사 기간을 포함해 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서로 경쟁적으로 투자하다보니 검토부터 투자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리해졌죠.
특히 인기있는 투자건일수록 내가 안하면 어차피 남이 하는 구조가 되어,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면 실사를 최소화하거나 없다시피 해야 겨우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제일 핫한 인도네시아의 더 핫한 스타트업이라면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죠.
미상장 기업에 대한 규제 공백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투자자들이 투자 전후로 포트폴리오에 있는 스타트업들을 자체적으로 모니터링하지만, 2020 - 2021년 당시에는 그렇게 투자건 하나 하나 들여다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새로운 투자건이 계속해서 치고 들어왔죠. 상장사와 달리 스타트업은 재무제표 공시 의무도 없으니, 유일한 안전장치가 없었던 셈이죠.
그 놈이 그 놈인 스타트업 씬
한국에서도 사기광고라는 고질적인 질병이 있죠. 한국에서도 특정 집단의 일부 창업자들은 건기식 허위광고를 이용한 사기 수법을 공유하고, 시스템의 허점에서 쉽게 돈을 법니다.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스캔들은 이 현상의 더 나이브한 버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도네시아의 스타트업씬은 급격하게 성장한만큼, 씬이 좁고 대체로 비슷한 배경의 창업자들이 많습니다. 누가 시작점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조작된 회계지표로 투자를 받고, 투자금을 횡령해도 어차피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유사성이 높은 창업자들로만 이루어진 스타트업 씬에서는 다른 창업자도 시도할 확률이 굉장히 높고, 그만큼 전체 씬에 대한 영향력도 큽니다.
6. Tech in Asia Conference 2025에서 본 재건의 의지
2025년 10월 자카르타에서 열린 Tech in Asia Conference 2025에서는 스캔들의 여파 속에서 생태계 재건을 위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지난 글 <기로에 선 인도네시아>에서 다뤘듯, East Ventures의 공동창업자인 Wilson Cuaca와 Bukalapak 창업자이자 벤처투자사 Init-6의 파트너인 Achmad Zaky는 여전히 시장에 투자될만한 자금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몇몇 문제를 가진 스타트업들이 인도네시아에 투자하던 투자자들의 태도를 보수적으로 바꿨지만, 명확한 투자가치를 보여준다면 투자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에디터 노트 - 어떻게 이 문제를 헤쳐나갈 것인가
2025년 04월 16일 SVCA(Singapore Venture and Private Capital Association)를 중심으로 다섯개의 동남아시아의 VC 협회는 스타트업의 초기부터 상장까지의 거버넌스를 위한 프레임웍을 제시하는 <Maturation Map: Corporate Governance in Southeast Asia Private Markets> 을 발표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스타트업씬은 서로가 깊이 연결되어 있는만큼, 이런 움직임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급격하게 성장한만큼 급격하게 냉각된 지금, 실수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확실히 배우고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시스템화한다면 조금 더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거라 기대해봅니다.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윈터는 집단적 광기 속에서 키워진 통제 불가한 부정이 터지면서 치명타를 맞았고, 쉽게 회복하기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2억 8천만 인구와 USD 770억(2025년 전망) 규모의 디지털 경제, 높은 인터넷(및 모바일) 보급률을 고려하면 인도네시아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탄탄합니다. 이런 인도네시아에서 다시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스타트업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오늘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CEO로서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유명 투자자 워렌 버핏의 말로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 Warren Buffet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