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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 소개 - 박상춘 컨설턴트
하노이에서 국내 SME들의 베트남 시장 진출을 돕는 컨설턴트입니다. 국내 VC에서 베트남 스타트업 관련 실무를 계기로,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서 연줄 하나 없이 하노이로 무작정 건너왔습니다. 지금은 현지 시장 조사, 바이어 소싱, 수출 매칭 등 이곳 베트남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걸 배우고, 그때마다 "이거 공유하고 싶다!"고 느끼는 것들을 글로 담아봅니다.
한국에 대선이 있다면, 베트남에는 당대회가 있습니다. 5년마다 열리는, 국가라는 함선의 5년간의 항로를 정하는 최대의 정치 이벤트입니다. 올해 1월에 개막한 제14차 당대회, 하노이 현지의 분위기는 정말 심상치 않았습니다. 1986년 도이머이(Đổi Mới) 선언 이후 가장 큰 체제 전환이 발생했거든요.
이번 글은 ‘2026 베트남 정치의 흐름 읽기’ 시리즈 1편입니다. 1편에서는 프레임의 전환 자체와 그 변화가 만들어낼 비즈니스적 함의에 대해 다루어 볼 생각이고, 향후 2편에서는 그렇게 짜여진 판 안에서 ‘누가’, 그리고 ‘어떻게’ 정책을 실현해 나갈 것인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에요. 오늘은 우선, 이번 당대회가 대체 무엇을 바꿔놓았고, 그것이 스타트업과 벤처 기업의 베트남 비즈니스에 어떤 의미일지,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핵심 요약
2026년 1월 14차 당대회에서 40년간 유지된 집단지도체제(4주 체제)가 사실상 종식. 또럼 총비서의 국가주석 겸직이 유력하며, 당대회 대표단의 3분의 2(1,070명)가 중앙 지명이라는 전례 없는 구성.
행정구역 통폐합(63개→34개), 간부 순환제(지시 45호), 중앙위원회 재편을 통해 지방 자율성을 급격히 축소. 북부 출신이 남부 대비 2.6배 수적 우위를 점하는 중앙집권 구조 완성.
배경은 중진국 함정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 도이머이 40년 역사상 한 번도 달성한 적 없는 연 10%대 성장률을 당대회 결의로 공식화. ‘안정’보다 ‘성장’을 택한 국가적 베팅.
베트남에서는 원래 PMF(시장 적합성)만으로는 부족했고 PGF(정부 적합성) 또한 필수인 구조. Grab, MoMo 등의 사례가 증명하듯, 국익에 부합하면 밀어주고 아니면 빅테크라도 내치는 철저한 실용주의 규제.
한국 기업에 미치는 변화: 지방 꽌헤(quan hệ) 네트워크가 리셋되는 중. 설득해야 할 상대가 지방에서 중앙으로 옮겨졌고, 당 중앙의 KPI에 맞춘 B2G 세일즈가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될 것으로 예상됨.
1. 40년 만의 대격변 — 4주(柱) 체제의 종식과 1인 체제의 공식화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베트남 정치 구조를 아주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베트남은 공산당이 유일 정당인 일당 체제 국가입니다. 선거도 있고 국회도 있지만,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의 출발점은 공산당이에요. 헌법 제4조에 “공산당이 국가와 사회를 영도한다”고 명시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한국이나 미국처럼 대통령 1인이 국가를 대표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베트남에서는 4개의 핵심 직위가 권력을 나눠 갖는 집단지도체제를 40년간 유지해왔어요. 이걸 ‘4주(柱) 체제’, 네 개의 기둥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베트남 정치의 역사상, 서열 1위인 총비서(당의 수장)와 서열 2위인 국가주석(국가 대표·외교 수장)을 반드시 다른 사람이 맡아 왔습니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걸 구조적으로 막아온 거죠. 허나, 이번 14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또럼(Tô Lâm) 총비서가 국가주석을 겸직하는 강력한 1인 체제로 전환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해당 전환이 즉흥적인 게 아니라 치밀하게 사전 기획된 과정이었다는 부분에 있습니다.
4개월 전에 깔린 포석
당대회 4개월 전인 2025년 9월, 중앙위원회는 규정 368호를 발표해 기존 4주 체제에 ‘상임 비서’를 더한 5주 체제로 공식 개편했습니다. 국가 핵심 지도자 자리를 4개에서 5개로 늘린다? 겉으로 보면 권력이 더 분산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실제 14차 당대회에서, 무대에 올라온 건 총비서, 수상, 국회의장, 상임 비서 단 4명이었습니다.
베트남 국내외의 다수 정치학자들은 높은 가능성으로 또럼이 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을 겸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확정은 3월 15일 총선 이후 구성되는 16기 4월의 국회의 1차 회기에서 나오게 되겠지만요) 기존 4주 체제에서 서열 1위(총비서직)와 서열 2위(국가주석직)를 한 사람이 동시에 맡는다는 건, 상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권력 일원화 흐름의 강력한 방증입니다.
상향식 선출 원칙의 붕괴: 대표단의 3분의 2가 중앙에서 지명되다
당대회 시즌에는 베트남 전국 각지에서 국가적 의사결정을 위해 당대회 대표자들이 하노이로 집결합니다. 이번 당대회만 하더라도 총 1,586명의 당대회 대표자들이 하노이로 집결하였습니다. 원래 당대회 대표자들은 일선 현장의 당원들이 아래에서 위로 투표해 올려보내는 상향식 선출이 원칙입니다. 지금까지 과거 사례에서는 전체 1천여 명의 대표 중 당 중앙(정치국)이 직접 지명하는 인원은 불과 11~15명 남짓에 불과하였다고 합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특정 대표자를 중앙 정부에서 지명하여 호출한 것이지요. 정말 이례적이게도, 이번 14차 당대회에서는 전체 1,586명 중 무려 3분의 2에 달하는 1,070명이 (또럼 총비서가 소속된) 정치국의 지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베트남 당대회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수치입니다.
또럼의 실질적 국가 수반으로서의 국빈 방문 주도
또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명목상 국가주석(르엉끄엉)이 따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럼 총비서는 이미 총비서로 선출된 당시부터 주요국 국빈 방문을 직접 주도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흥미로운 디테일이 있습니다. 통일 베트남 역사를 통틀어, 총비서든 국가주석이든 해외 국빈방문에 배우자를 공식 동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지도자의 배우자는 철저히 공식 무대 뒤에 머무는 것이 불문율이었어요. 그런데 또럼 총비서가 이 불문율을 깼습니다. 2024년 8월 중국 국빈방문부터 부인 응오프엉리(Ngô Phương Ly)를 동반한 ‘영부인 외교’를 시작했고, 이후 한국, 라오스 등 주요국 순방에서도 이를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중국의 시진핑 총서기가 1인 체제를 공고히 하던 초기, 펑리위안 여사를 동반해 외교 무대에 세웠던 것과 정확히 비슷한 행보입니다. 정식적인 국가수반은 어디까지나 ‘국가 주석’이었지만, 또럼 총비서는 이미 사실상의 국가 수반으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던 거예요.
2. 북쪽으로 기울어지는 운동장 — 지방 통제 강화와 권력 편중
1인 체제 구축만큼이나 눈에 띄는 변화가 있습니다. 지방 통제의 급격한 강화와 권력의 지리적 편중이예요.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짚고 가겠습니다. 중앙위원회(Ban Chấp hành Trung ương)라는 기구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여당의 최고위원회 그리고 내각 국무회의를 둘로 합쳐놓은 느낌이라고 보시면 돼요. 180명의 정위원으로 구성되며, 당대회와 다음 당대회 사이 5년간 당의 모든 사업을 지도하는 베트남 내 실질적 최고 의사결정 기구입니다. 국가 핵심 정책을 추인하고, 국가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원(14기 기준 19명)을 선출하는 권한까지 가진 핵심 집단이에요. 이 180석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곧 권력의 향방을 결정합니다.
이제, 관련된 자료들을 한번 볼까요? 관련된 자료들과 그 안의 숫자들을 보면 흐름이 뚜렷합니다.
행정구역 통폐합, 지방의 파이가 줄어들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2025년 7월 1일부로 베트남 내 행정구역이 전면적으로 개편되었습니다. 기존 63개 성(省)이 34개로 대폭 줄었는데요, 대의명분은 거버넌스 혁신이라는 명목이지만, 사실 이러한 개편은 중앙위원회 구성과 국가의 의사결정 방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기존 63개 성 체제에서는 180명 중 중앙 부처 소속이 약 110명(61%), 지방 소속(현직 당비서·인민위원장 등 지방 간부)이 약 70명(39~40%)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정구역이 34개로 줄면서 지방 몫의 중앙위원이 57명(32%)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당의 최고 결정 기구 안에서 지방의 파이가 그만큼 작아진 겁니다.
흥옌(Hưng Yên)성의 약진, 북부의 약진
그저 지방의 목소리만 작아진 것은 아닙니다. 뚜렷한 권력 편중의 흐름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 현지에서 진행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베트남센터장 김용균 교수의 세미나 내 분석에 따르면, 베트남 공산당의 당대회마다 중앙위원 180명은 평균적으로 약 45~50%가 새로운 인물로 교체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11기 51%, 12기 54%, 13기 43%, 그리고 이번 14기에도 전체의 45%가 물갈이되는 자리이고, 즉 중앙위원이라는 자리는 한 기수가 지날 때마다 거의 절반이 짐을 싸야 하는, 연임이 어려운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칼바람 속에서, 흥옌성 출신은 13기에 선임되었던 7명 중 6명이 14기에서 그대로 생존했습니다. 거기에 신임까지 더해져 14기 중앙위원회에서 흥옌성 출신은 무려 13명으로 급증했어요. (참고로 흥옌 성은 또럼 총비서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과거 베트남은 북부 29개 성, 남부 34개 성으로 남부가 수적으로 더 많았고, 중앙위원 비율도 북부가 남부의 약 1.5배 수준으로 어느 정도 지역적 균형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14기를 기점으로 이 격차가 2.6배(남부 출신 1명당 북부 출신 2.6명)로 급격히 벌어졌어요. 과거의 지역 안배를 중시하던 구조에 분명한 신호로 균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간부 순환 보직제(중앙위 지시 45호): 지방 유착 구조, 뿌리째 끊어내기
여기에 결정적인 한 수가 더 있습니다. 간부 순환 보직제(중앙위 지시 45호)예요. 당비서와 성(省) 인민위원장(한국의 도지사 정도에 해당합니다)을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닌 타지 출신으로 임명하도록 의무화한 제도입니다.
이 정책 방향 자체는 또럼 총비서의 주도하에 2022년부터 이미 본격 시행에 들어갔고, 2025년 4월 14일 지시 45호로 공식 하달, 같은 해 11월에 전국적인 교체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쉽게 한국식으로 예를 들면, ‘지역 토박이 출신 인물은 해당 지역의 도지사를 맡을 수 없다!’ 라는 식의 제도에요.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로 타지에서 파견되어 새롭게 당비서와 인민위원장 자리를 꿰찬 인물들은 대부분 당 중앙이 지명한 북부 출신이었습니다. 흥옌, 응에안(Nghệ An), 타이응우옌(Thái Nguyên), 박닌(Bắc Ninh) 등 특정 북부 지역 출신 간부들이 전국 각지의 핵심 지방 권력을 장악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과거 베트남은 지방 간부들이 해당 지역 출신으로 구성되면서 지역 유착와 부패, 비효율적 거버넌스 문제를 겪어왔거든요. 이 제도는 그 지방에 뿌리 깊은 유착 구조를 송두리째 끊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3. Why? — ‘민족 부흥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묻고 따블로 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 지도부 입장에서 보면, 이건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을 건 베팅을 한 셈이에요.
또럼 총비서는 2024년 9월 국경절 연설에서 ’민족 부흥의 새 시대(Kỷ nguyên vươn mình của dân tộc)’를 선언했고, 이번 14차 당대회에서 이를 구체적인 국가 목표로 공식화했습니다. 이는 과거 40년의 도이머이 시대를 넘어 새로운 차원의 도약을 하겠다는 선포입니다.
구체적인 청사진은 이렇습니다.
2030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 중상위 소득 국가 진입 (1인당 GDP 8,500달러)
2045년 (독립 100주년): 선진국 도약
이 목표를 위해 이번 당대회에서 공식화한 수치가 있습니다. 향후 5년(2026~2030년)간 매년 10% 이상의 경제성장률. 이건 한국으로 치면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 시기의 성장률이에요. 2026년 현재 이 시점에 이 숫자를 목표로 건다는 건 가히 파격적이고 과감한 목표 설정입니다. (참고로 지난 20년간 베트남은 단 한번도 연간 GDP 성장률 10%대를 달성한 적이 없습니다. 최근 가장 높았던 해가 2022년의 약 8.5% 수준이었죠.)
배경에는 중진국 함정에 대한 지도부의 심각한 위기의식이 있습니다. 기존의 ‘안정 속 성장’ 기조로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처럼 도중에 엔진이 꺼져버릴 수도 있겠다는 염려를 베트남 지도부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거죠. 그래서 다소간 ‘안정’을 버리더라도 ‘성장’을 택하겠다는 과감한 ‘국가적 베팅’을 감행한 겁니다.
이 엄청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 국가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권력 편중과 지방 통제 강화’의 흐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설명됩니다. 사실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지방 자치 권력이 대단히 강한 나라였습니다. 중앙에서 국가적인 개혁 정책 하나를 강하게 드라이브하려고 해도, 개별 성(省)의 간부들이 국가 전체의 비전보다는 각자의 이권만 챙기느라 이행에 속도를 붙이기 어려웠습니다. 본사에서 회사의 명운을 건 신사업을 추진하려는데, 전국 63명의 지사장들이 각자 자기 지점의 단기 손익만 따지며 본사의 지시를 뭉개고 딴청을 피우는 거대한 프랜차이즈 회사와 같았달까요?
이런 내부 거버넌스의 고질적인 비효율과 분절적인 구조로는 도저히 10%대 고도성장이라는 과감한 베팅을 실행할 수 없다고, 베트남 지도부는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정구역을 통폐합하고, 간부 순환제를 밀어붙이고, 중앙위원회 구성을 재편하면서까지 국가의 모든 동력을 하나의 목표로 집중시키는 길을 택한 거예요.
그럼, 거버넌스는 그렇다 치고, 재정적인 체력은 충분할까요? 다행히도 현재로서는 이걸 뒷받침할 재정 여력도 충분하다고 판단됩니다. 베트남의 공공부채는 GDP 대비 32% 수준으로, 타 주요국들의 수치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에요.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기준) 향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과감한 인프라 투자와 확장적 통화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이 모델에는 태생적으로 안고 가는 그림자도 있습니다. 1인 독단적 의사결정에 따른 정책 실패 리스크(무리한 고도성장 드라이브가 외환위기 같은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 특정 파벌로의 권력 과집중에 따른 개인 측면의 부패 심화 가능성, 그리고 후계를 둘러싼 당내 권력 투쟁의 격화 등이 그 예시지요. 강력한 추진력의 이면에는 이런 구조적 취약점이 늘 따라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모델이 ‘베팅’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4. 국가를 읽어야 이기는 시장, 이제 읽을 곳이 달라졌다
여기서부터는 베트남 내 비즈니스를 영위하시는 스타트업이나 벤처 주체들에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이야기입니다.
꽌헤(quan hệ)의 리셋: 이제 설득해야 할 상대가 바뀌었다
중국에 ‘관시(關係)’가 있다면 베트남에는 ’꽌헤(quan hệ)’가 있습니다. 지방 관료와 술자리, 지연, 장기적 스킨십으로 관계를 쌓아가는 전통적인 비즈니스 방식입니다. 그런데 지시 45호에 따라 타지 출신 간부가 낙하산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토착 네트워크가 리셋되고 있습니다. 몇 년에 걸쳐 쌓아둔 로컬 관료와의 관계가 간부 교체 한 방에 무력화될 수 있는 환경이 된 거예요.
앞으로 민관 협력과 인허가는 어떻게 바뀔까요? 확정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겠지만, 큰 방향성은 명확합니다. ‘지방 정부의 비위 맞추기’에서 ’당 중앙의 핵심 KPI에 솔루션 기여를 증명하기’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 당 중앙이 지방에 요구하는 핵심 성과 지표(KPI)인 ‘디지털 전환, ESG, 생산성 혁신’ 등이 되겠지요.
B2G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10%대 성장을 달성하려면 정부가 대규모 인프라에 돈을 쓸 수밖에 없고, 1인 체제 하에서 지도부는 ‘단기적인 실적(숫자)’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립니다. 결과적으로 ‘도입 즉시 눈에 띄는 효율’을 만들어내는 솔루션이 각광받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ConTech, GovTech, Logistics Tech 같은 영역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PMF를 넘어 PGF도 필요한 구조
사실 위에서 이야기한 흐름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닙니다. 베트남은 원래 이런 나라였어요.
벤처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PMF(Product-Market Fit), 즉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한국이나 미국, 싱가포르와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정석이죠. 시장의 논리와 소비자의 선택이 벤처 생태계를 주도합니다. 그런데 베트남은 다릅니다. 여기서는 PMF를 넘어 PGF(Product-Government Fit) 또한 필요합니다. 국가가 시장의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에 올라탄 기업이 승리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이해하려면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베트남은 법과 규제의 회색지대(Grey Area)가 넓은 신흥국입니다. 또한, 공산당 일당 체제 특유의 하향식(Top-Down) 의사결정 구조가 더해지면서, 인허가 절차나 법령 해석에서 정부의 재량권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베트남에서는 그저 소비자 수요를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어요. 해당 비즈니스가 ’자국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 증진’과 ’국가 발전 어젠다’에 부합하는지를 증명해야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베트남에서 사업을 한다면 고객뿐 아니라 국가도 설득해야 했던 셈이지요.
국익에 부합하면 밀어주는 실용주의 규제의 사례
‘국가를 설득해야 한다?’라는 이야기가 와닿지 않으실 수도 있으니, 구체적 사례로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베트남 정부는 이념이 아니라 철저한 ’실용주의’에 입각해서 움직입니다. 국익에 부합하면 기존 이해관계자와의 마찰을 감수하고서라도 밀어주고, 아니면 글로벌 빅테크라 해도 예외 없이 내칩니다.
[사례 1]: 그랩(Grab) — “전통 업계가 아무리 반발해도, 국가에 이득이면 지지한다”
그랩이 베트남에 처음 진출했을 때, 기존 택시 업계(Vinasun, Mai Linh 등)는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시위와 소송이 수년간 이어졌어요. 그런데 베트남 정부의 대응이 흥미롭습니다.

결정문 24호(Decision 24, 2016년): 기존 택시 법망에 그랩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대신, ‘전자 계약 기반 여객 운송 시범 사업’이라는 샌드박스(규제 유예)를 열어줬습니다.
의정 10호(Decree 10, 2020년): 수년간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법령입니다. 택시 업계는 “그랩 차량에도 지붕 위 ‘TAXI’ 갓등(Light box)을 의무화해달라”고 강력히 로비했어요. 하지만 정부는 기술 기반 운송 차량은 갓등 대신 반사 스티커만 붙여도 된다고 판결하며, 결국 그랩의 비즈니스 모델인 ‘택시 면허 없는 일반 자가용 차주가 앱을 통해 운송 서비스에 뛰어드는 플랫폼 구조’를 공식 합법화해 줬습니다.
그랩과 전통 택시 업계의 전투에서 베트남 정부는 왜 샌드박스를 열어주고, 최후에는 그랩의 손을 들어주었을까요? 수많은 요인들과 이유가 있었겠습니다만, 그 중 강력한 한 이유는, 베트남 정부가 그랩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수십만 명의 유휴 인력에게 긱 워커(Gig worker)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낙후된 대중교통의 디지털화를 가속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계산도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이 국가 발전 어젠다에 압도적으로 유리했고, 또 베트남 정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예요.
Grab과 베트남 전통 택시업계의 치열한 공방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은 별도 칼럼에서 한번 깊이 다뤄보겠습니다.
[사례 2]: 모모(MoMo)와 VNPAY — “정부가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핀테크가 그 위를 달리게 했다”
모모(MoMo)와 VNPAY의 폭발적 성장은 단순히 앱이 편리해서가 아닙니다. 베트남 총리가 직접 서명한 결정문 1813호(Decision 1813)에 따라, ‘2021~2025년 현금 없는 결제 발전 프로젝트’라는 국가 마스터플랜이 먼저 수립됩니다. “전체 상거래에서 현금 비율을 10%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명확한 국가 KPI가 설정된 상태에서, 모모와 VNPAY는 이 미션을 수행하는 최전선 파트너로 낙점된 겁니다.
베트남 정부는 중앙은행 산하 NAPAS가 국가 표준 QR코드 ’VietQR’을 만들게 하고, 이를 주요 전자지갑 및 은행 앱과 완벽 연동시켰습니다. 정부가 인프라(고속도로)를 깔아주고 핀테크(자동차)가 그 위를 달리게 한 셈이죠.
[대조 사례]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단호한 통제
반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넷플릭스, 페이스북, 틱톡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현지 콘텐츠 규정을 위반하거나 사회 안정을 저해한다고 판단되면, 접속 차단이나 세무 조사, 데이터 현지화 의무(사이버 보안법) 등 단호한 조치를 즉각 취합니다. 글로벌 빅테크라고 예외가 없어요.
필자 의견
사례들로 설명드렸듯이, 국가가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에 올라탄 기업이 이기는 이러한 시스템은, 원래 베트남 내 비즈니스들의 작동 방식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14차 당대회 이후 이 흐름이 완전히 다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판이 바뀌었거든요. 앞서 다루었던 변화들이 여기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과거에는 4주 체제에서의 내부적 합의 과정이 필요했어요. 총비서·국가주석·총리·국회의장이 머리를 맞대고 방향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합의 과정이 사라졌습니다. 1인 의사결정 체제가 되면서 정책 결정에서 실행까지의 사이클이 획기적으로 단축된 거예요. 더하여, 중앙이 밀어붙이면 지방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완성되었습니다. 고속도로의 제한속도가 갑자기 풀린 느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회도 빠르지만, 리스크도 빠를 것입니다.
저는 이 변화가 한국을 포함한, 외국계의 비즈니스 주체에게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63개 성(省)마다 다른 인민위원회, 다른 담당자, 다른 룰이 있었어요. 각 지방마다 인허가를 따기 위해 각개전투를 해야 했고, 성(省) 하나에서 쌓은 관계가 옆 성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구조가 바뀌었습니다. 당 중앙의 단 하나의 아젠다에만 집중하면 되니까요.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어젠다를 읽는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지방 정부와 공들여 쌓아둔 관계가 담당자 교체 한 번에 리셋될 것입니다. 중앙 정부의 KPI에 맞춰 우리의 IR덱을 전면 재구성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거예요.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40년 된 엔진을 통째로 갈아끼우고 있습니다. 새 엔진이 제대로 작동할지, 과부하가 걸릴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베트남 정부가 어디를 향해 달리려 하는지, 그 방향과 목적을 지금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읽고, 우리의 전략을 해당 목적성에 맞춰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은 40년 만에 국가 운영 시스템을 통째로 리셋했습니다. 집단지도체제를 버리고 1인 체제를 택했고, 안정을 버리고 성장을 택했습니다. 이 베팅이 어디로 향할지 우리가 주시해야 할 이유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짜여진 판 안에서 ‘누가’, 그리고 ‘어떻게’ 베트남이 정책을 실행하고 굴려나갈 것인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룹니다. 결의안 68호가 왜 공산국가 역사상 전례 없는 게임체인저인지, 10% 고도성장 드라이브를 베트남 정부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내고자 하는지, 4월 국회 1차 회의 시즌에 맞춰 풀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