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인도네시아 검찰이 나디엠 마카림(Nadiem Makarim)에게 징역 18년을 구형했습니다. 배상금 IDR 5.68조(약 USD 324M)를 내지 못하면 9년이 추가됩니다. 법정을 나서며 나디엠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사실상 27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기록적입니다.”
참고로 인도네시아의 2024년 부패 사건 평균 형량은 3년 3개월입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먼저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나디엠은 Gojek을 만든 사람입니다. 인도네시아 최초의 데카콘이죠. 동남아시아의 라이드헤일링 하면 Grab이 가장 유명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Gojek이 Grab보다 점유율도 높았던 대단한 스타트업입니다. 그런 나디엠을 2019년 조코 위도도(Jokowi) 전 대통령이 민간에서 발탁해 교육문화부 장관으로 앉혔습니다. 즉, 조코위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인도네시아 대표 스타트업의 창업자가 장관에 임명되었으니, 기대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조코위 전 대통령이 물러난 지금, 조코위의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부 출신의 현 대통령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는 2024년 대선에서 조코위의 아들 기브란 라카부밍(Gibran Rakabuming)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워 당선됐습니다. 원래 2014년, 2019년 대선에서 맞붙었던 정적끼리의 거래였죠. 그런데 취임 이후 프라보워는 조코위와의 거리를 체계적으로 벌리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탈조코위화(de-Jokowi-sation)”라고 부르는 흐름입니다. 2025년 9월 내각 개편에서 조코위 시대 장관 다수를 교체했고, 조코위의 최대 정적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PDI-P 대표)에게 손을 내밀고 있으며, 퇴역 군인 포럼은 부통령 기브란의 탄핵을 공식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조코위 시대 인사들이 하나둘 법적 문제에 엮이고 있습니다.
나디엠의 재판은 이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탈조코위화의 산물인지, 타이밍만 겹친 정당한 수사인지. 이 글에서 따져봅니다.
5년 전 장관으로 임명된 나디엠은 지금 자카르타(Jakarta, 인도네시아) 부패법원에 서 있습니다. USD 570M 규모의 학교 디지털화 사업에서 구글 크롬북을 의도적으로 선택해 사적 이익을 취했다는 혐의입니다. 하지만 파장은 나디엠 한 사람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생태계가 피해왔던 질문이 법정에 올라왔습니다.
어디까지가 타당한 책임 추궁이고, 어디부터가 범죄화인가.
검찰이 주장하는 것
문제가 되는 부분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 77,000개 학교에 크롬북 120만 대를 보급한 사업입니다.
크롬북은 구글의 클라우드 기반 운영체제 Chrome OS로 작동합니다. 윈도우 노트북과 달리 인터넷 연결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고, 오프라인 기능은 제한적입니다. 교육부 산하 정보통신센터가 2018년에 이미 “인도네시아의 농촌 지역 인터넷 환경을 고려하면 크롬북은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고, 2019년에 실제 시범 운영을 해본 결과도 같았습니다. 안정적인 인터넷이 없는 학교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대상 학교 77,000곳 중 상당수가 바로 그런 지역에 있었습니다.
기술팀의 원래 권고안은 Chrome OS와 Windows를 혼합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입찰에 나간 사양은 100% Chrome OS였습니다. 여기에 Chrome Device Management(CDM)라는 기기관리 소프트웨어 구매까지 추가됐는데, 윈도우 노트북이었다면 필요 없었을 비용입니다.
왜 사양이 바뀌었는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입니다. 검찰총장실조차 “불분명한 이유로 OS가 변경됐다”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검찰은 나디엠이 2020년에 구글 아시아태평양과 구글 인도네시아 관계자들을 여러 차례 만났고, 그 이후에 사양이 변경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나디엠 측은 5월 6일 회의에서 양쪽 OS를 모두 논의했으며, 이후 기술팀이 자체적으로 100% Chrome OS로 바꾼 것으로 자신은 그 사실을 몰랐다고 반박합니다.
나디엠 측 변론에는 비용 관련 반박 논리도 있습니다. 크롬북이 윈도우 노트북보다 개당 10-30% 저렴하고, Chrome OS 설치는 무료인 반면 윈도우는 라이선스 비용이 든다는 것. 팬데믹 기간 수백만 대를 빠르게 보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예산 효율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것은 5개 크롬북 벤더 중 하나인 Zyrex가 조코위 내각의 실세 Luhut Binsar Pandjaitan이 51% 지분을 보유한 회사였고, IDR 700B(약 USD 40M) 규모의 납품 계약을 수주했다는 점입니다. 인도네시아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 나디엠 기소 내용에는 빠져 있습니다.
검찰의 주장은 세 갈래입니다.
교육부 자체 연구가 반대했음에도 나디엠이 크롬북 전용 입찰 사양 변경을 지시했다
이로 인한 국가 손실이 IDR 2.18조(약 USD 124.5M)에 달하며, 노트북 과다 지출(IDR 1.56조)과 불필요한 CDM 소프트웨어(IDR 621B)로 나뉜다
나디엠이 이 조달 과정에서 IDR 809B(약 USD 46M)를 개인적으로 취득했으며, 이는 구글이 Gojek 모회사에 투자한 것과 연결된다
검찰은 배상금 IDR 5.68조(나디엠 개인 이득 환수 IDR 809B + 벤더 이득 환수 IDR 4.87조)와 벌금 IDR 10억도 함께 청구하고 있습니다.
억지스러운 부분들
같은 사건 내 형량의 차이
같은 사건의 공동 피고인들은 이미 판결을 받았습니다.
같은 사건의 공동 피고인은 4년, 나디엠은 18년 구형. 나디엠이 사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법적 근거만으로는 이 격차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Ibrahim Arief 판결이 남긴 선례
나디엠 구형 전날 내려진 Ibrahim Arief 판결을 보면 재판부는 그에게 4년형을 선고했지만, 판결은 3인 재판부의 분리 결정이었습니다. 2명의 판사가 반대 의견을 내면서, 검찰이 핵심 혐의인 개인적 이득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수결로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Tech in Asia는 이를 두고 “핵심 동기에 대해 증거가 부족해도 4년형을 받을 수 있는 법적 지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반대 의견을 낸 판사들은, Ibrahim의 역할이 구속력 없는 기술 자문에 그쳤고 검찰이 부패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봤습니다.
빈약한 구글과의 연결성
검찰의 핵심 논리는 이렇습니다. 나디엠이 구글의 Gojek 투자에 보답하기 위해 크롬북 딜을 유도했다는 것. 하지만 Scott Beaumont(전 구글 아시아태평양 사장), Caesar Sengupta, William Florence 등 전직 구글 임원 3명이 Zoom으로 증언에 나서서, 구글의 투자와 조달 결정 사이에 어떤 연결도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구글은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고, 나디엠은 조달 문서에 서명한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증거는 없습니다. 검찰의 주장은 정황에 기반한 의심에 불과합니다.
정치적 배경
앞서 설명한 탈조코위화 기류를 감안하면, 이 사건은 정치적인 결정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프라보워 정부가 조코위 사람들을 정리하고 있고, 나디엠은 가장 맛있어 보이는 타겟입니다.
애매한 부분들도 물론 있습니다.
크롬북 조달 수사는 프라보워 정부 이전에 이미 검찰(AGO)에서 진행 중이었습니다. 나디엠이 피의자로 지정된 건 2025년 9월, 프라보워 취임 1년도 안 된 시점이지만, 조코위 정부 시절에서부터 수사는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Tempo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나디엠이 조코위에게 IDR 450조를 송금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나디엠의 변호사 Hotman Paris Hutapea는 프라보워 대통령에게 “무죄 입증을 위해 10분만 달라”고 공개 호소했지만, 대통령 커뮤니케이션실은 법적 절차에 맡기겠다며 공식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부패 사건 형량은 조코위 연관 인사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강경해지는 추세이긴 했습니다. Pertamina 임원이 15년, PT Timah의 Harvey Moeis가 항소심에서 20년, Sritex 형제가 이달 12~1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즉, 수사 자체는 정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8년이나 구형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수사가 타당한 근거로 시작되었다 해도, 정치적인 이유에 형량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코위와 거리를 두는 것이 정부의 기조인 상황에서, 판결이 나기 전임에도 방향성은 모두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결국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뚜렷한 증거가 없음에도 18년 구형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겠죠.
위축 효과
나디엠 사건은 결국 스타트업 윈터, 그리고 스타트업 씬의 위축과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2년간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생태계는 창업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eFishery의 Gibran Huzaifah는 매출을 USD 752M으로 보고했지만 실제는 USD 157M였던 거대한 회계조작을 저질렀고, 9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Investree의 Adrian Gunadi는 카타르로 도주했다가 인터폴을 통해 송환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TaniHub 전 임원들은 투자자 사기 혐의로 재판 중입니다.
위에서 말한 사건들은 명확한 사기였습니다. 조작된 장부, 횡령된 자금, 유령 회사. 증거가 명백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결이 다릅니다. 확실한 혐의가 없습니다. 개인 계좌로 빠져나간 자금이 추적되지 않습니다. 해외로 도주하지도 않았습니다. 검찰의 주장은 정황에 따른 추측에 불과합니다. 구글이 Gojek에 투자했으니 나디엠이 구글 크롬북을 밀었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 논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진다면, 파장은 하나의 법정을 넘어섭니다. Tech in Asia의 LinkedIn에 달린 댓글 하나가 핵심을 짚었습니다. “창업자들이 이제 번레이트만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내린 사업적 판단이 언젠가 스스로를 법정에서 철퇴를 맞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eFishery 사건으로 이미 얼어붙은 시장에서, 이 사건은 불신을 넘어 공포를 심을 수 있습니다. VC들은 이미 인도네시아 거버넌스에 대해 더 까다롭게 물었는데, 이제는 정부 조달이나 정책에 관여한 적 있는 창업자에 대해 기소 리스크까지 가격에 반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디엠 측의 최종변론은 6월 초로 예상됩니다. 판결은 수 주 내에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업데이트: 6월 2일 최종변론이 진행되었으며,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종변론에서 나디엠은 “젊은 전문가들이 다음 피해자가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며 경고했습니다.
어떤 판결이 나오든 이미 메세지는 확실히 전달되었다고 봅니다. 인도네시아 사법 시스템은 성공한 테크 창업자에게 테러리즘 사건에 준하는 형량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타당한지 아닌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스타트업 생태계에 주는 효과는 같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겁니다.
에디터 노트
사기에 대한 응당한 패널티와 정책적 결정을 범죄화해 기소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eFishery 청산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매출을 USD 600M 가까이 부풀리면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고, 그 메시지는 전달됐습니다.
하지만 나디엠 사건은 동일선상에 있는 건이 아닙니다.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던 결정을 근거로, 결과적으로 낭비가 된 조달을 승인한 것이 조직적 금융사기와 같은 무게로 취급된다면 인도네시아에서 ‘부패’의 정의는 과도하게 넓어지게 됩니다.
저는 정치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앞으로 정부 계약을 수주하는 창업자부터 국부펀드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 혹은 조금이라도 정부나 정책과 관련된 일을 하게되는 사람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하게 될겁니다.
‘이 결정이 나를 법정에 서게 만들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