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카카오 브레인 대표 오픈리서치 대표 김일두가 투자금을 도박 자금으로 운용한 일로 한국 스타트업 씬이 시끌시끌했습니다. 그 이전엔 부릉(메쉬코리아) 대표 유정범의 학력조작 스캔들이 있었고, 큐텐/티콘/위메프 유동성 이슈도 있었죠. 이 뿐 아니라 많은 스타트업들이 유동성 장이 지나가면서 다양한 스캔들 혹은 사업성 부족으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에만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지난 뉴스레터 기로에 선 인도네시아에서 Marketing Interactive의 글과 함께인도네시아 스타트업씬이 처한 위기의 간략한 배경을 공유드렸던 것처럼, 인도네시아 또한 다양한 문제를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인도네시아 스타트업씬의 현재 상황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인 2억 8천만 인구와 빠르게 성장하는 디지털 경제를 바탕으로 한때 Gojek과 Tokopedia(이후 합병을 통해 GoTo가 되었음), OTA(Online Travel Agency) 플랫폼 Traveloka, E-commerce 플랫폼 Bukalapak 같은 유니콘들이 쏟아져 나오던 곳이었습니다. 그랬던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금 역사상 가장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습니다.
단순한 펀딩 감소가 아니라 USD 6억 규모의 회계 조작, CEO들의 연이은 체포, 유니콘들의 주가 폭락, 그리고 사업성 문제로 인한 폐업까지. 오늘은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윈터의 전말을 총정리해보겠습니다.
1. 숫자로 보는 겨울 - 스타트업 펀딩금액 95% 증발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펀딩은 2021년 USD 94.4억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디지털 가속화, 저금리, 그리고 GoTo와 Bukalapak의 성공적 IPO가 맞물리며 동남아 최대 스타트업 시장으로 부상했죠.
그러나 3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DealStreetAsia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펀딩은 USD 4.4억에 그쳤습니다. 피크 대비 95% 하락입니다. 2025년 상반기에는 USD 1.6억으로 더욱 줄어들었고, 이마저도 전년 동기 대비 43.5% 감소한 수치입니다.
더 심각한 건 딜 퀄리티입니다. 2024년 4분기 인도네시아 스타트업은 단 13건의 딜만 성사시켰는데, 이는 6년 만의 최저치입니다. 레이트 스테이지 투자는 사실상 전멸했고, 시드~시리즈A 초기 투자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초기 딜 특성상 대부분은 밸류에이션이 공개되지는 않지만, 저는 밸류에이션도 이전에 비해 많이 낮아졌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 유니콘들의 몰락: Bukalapak과 GoTo, 그리고 Traveloka
무엇보다 스타트업 윈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한때 인도네시아의 자랑이었던 유니콘 스타트업들의 주가 폭락입니다.
Bukalapak: IPO에서 이커머스 서비스 중단까지
2021년 8월, Bukalapak(이하 부칼라팍)은 인도네시아 최초의 유니콘 IPO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공모가 Rp 850, 상장 첫날 Rp 1,325까지 치솟으며 시가총액 Rp 109조(약 USD 76억)를 기록했죠.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생태계의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상장 후 주가 상승폭을 보면 부칼라팍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죠.
하지만 그 이후 주가는 끝없이 하락해 2024년 8월 역대 최저가 Rp 107을 기록했고, 현재도 Rp 12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IPO 대비 -85%, 시가총액은 Rp 109조에서 Rp 12.7조로 88% 증발했습니다.
결국 2025년 2월, 부칼라팍은 창립 15년 만에 이커머스 플랫폼 운영을 중단하고 유틸리티 결제 서비스로 사업을 전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Tokopedia, Shopee, Lazada, 그리고 TikTok Shop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결과입니다.
GoTo: 합병과 상장, 주가 폭락과 Tokopedia 매각
GoTo는 2021년 Gojek과 Tokopedia가 합병하며 탄생한 인도네시아 최대 테크 기업이었습니다. 합병 당시 기업가치 약 Rp 400조(USD 280억)로 평가받았고, 2022년 4월 공모가 주당 Rp 338에 IDX에 상장했습니다.
하지만 상장한지 얼마 안가 바로 비상 경영이 시작됐습니다. 2022년 11월 1,300명 해고(전체 인력의 12%), 2023년 3월 600명 추가 해고. 적자는 2022년 Rp 40.4조(USD 26억)에 달했습니다. 성과가 좋지 않다보니, 주가는 2024년 6월 Rp 50까지 추락해 IPO 대비 -85%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결정은 2024년 1월, Tokopedia 지분 75%를 ByteDance(TikTok)에 매각한 것입니다. 합병의 핵심 자산이었던 이커머스 사업을 사실상 포기한 셈이죠. GoTo는 이제 라이드헤일링과 핀테크에 집중하며 2024년 처음으로 조정 EBITDA 흑자를 달성했지만, 여전히 순손실 Rp 5조를 기록 중입니다. 그랩이 고젝 인수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이런 GoTo의 상황이 있습니다.
Traveloka: 유일하게 버티는 인도네시아 유니콘
여행 플랫폼 Traveloka는 상대적으로 나은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2023년 리벤지 트래블(revenge travel) 수혜와 비용 절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2024년 4월에는 2022년에 빌렸던 USD 3억 부채를 내부 자금으로 조기 상환할 정도로 재정적으로 건강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다만 Traveloka도 잘 버티고 있는거지, 씬의 분위기를 바꿀 정도는 아닙니다. 2023년 조용한 구조조정(silent layoffs)이 있었고, 2021-2022년 계획했던 IPO는 계속 연기되고 있습니다. 2020년 USD 30억으로 평가받던 기업가치가 현재 어느 수준인지는 불투명하고, 해외 시장으로의 확장은 다소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3. 연이은 스캔들로 완전히 무너진 신뢰
유니콘들의 주가 폭락과 별개로, 성장 단계 스타트업들에서는 심각한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eFishery: USD 6억 회계 조작의 충격
eFishery는 해양 양식업 분야 유니콘으로, SoftBank와 Temasek 등 글로벌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024년 말 내부 고발자가 재무 이상을 제보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포렌식 감사 결과, 2024년 1-9월 매출이 5배 부풀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조작 규모는 약 USD 6억. 더 충격적인 건 이중장부가 2018년부터 6년간 유지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Ernst&Young과 대형 투자사인 소프트뱅크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조차 무려 6년간 이를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2025년 8월, 창업자이자 전 CEO인 Gibran Huzaifah를 포함해 3명의 임원이 체포됐습니다.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 사건임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스타트업이었던 만큼, 더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Investree: CEO의 자금 유용과 인터폴 수배
P2P 대출 플랫폼 Investree는 USD 2.54억을 투자받은 핀테크 유니콘이었습니다. 하지만 2023년 대출 부실률이 16%까지 치솟았고, 조사 과정에서 CEO Adrian Gunadi가 회사 자금을 개인 계좌로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24년 1월 Adrian은 해임됐고, 이후 카타르로 도주해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이 됐습니다. 2024년 10월 금융감독원(OJK)은 영업 허가를 취소했고, 2025년 9월 Adrian은 카타르에서 구속, 인도네시아로 송환됐습니다.
TaniHub/TaniFund: 농업 혁신의 쓴 결말
농업 스타트업 TaniHub는 USD 65.5M을 투자받으며 주목받았지만, 자회사 TaniFund(농업 P2P 대출)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농업 대출의 부실률이 64%에 달했고, 128명 투자자에게 약 Rp 140억이 미상환됐습니다.
2024년 5월 OJK는 TaniFund 영업 허가를 취소했고, 2025년 7월에는 MDI Ventures CEO와 TaniHub 전 대표 등 3명이 부패 및 자금세탁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피해 규모는 USD 2,500만에 달합니다.
Zenius: 사업성 부족으로 인한 폐업
에듀테크 Zenius는 한때 2,000만 사용자를 보유했지만, 팬데믹 이후 사용자가 410만 명으로 급감했습니다. 오프라인 교육업체 인수를 통한 피봇도 실패하며 2024년 1월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과 실행력의 실패였죠. 스캔들은 없었으나, 시기상 인도네시아 스타트업에 대한 신뢰도 저하에 한 몫을 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Nadiem Makarim: 인도네시아 테크 리더에서 구속 피의자로
2025년 9월,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뉴스가 터졌습니다. Gojek 공동창업자이자 전 교육문화부 장관 Nadiem Makarim이 부패 혐의로 체포된 것입니다.
Harvard MBA 출신, 전 McKinsey 컨설턴트, 그리고 인도네시아 최초의 데카콘(기업가치 USD 100억 이상)을 만든 창업자 Nadiem은 인도네시아 디지털 경제의 상징적 인물이었습니다. 2019년 조코위 대통령은 그를 교육문화부 장관으로 발탁했고, 테크 기업가 출신 장관이라는 점에서 인도네시아 내외로 큰 기대를 모았죠.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재임 기간(2019-2024) 중 추진한 학교 디지털화 사업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이른바 “Chromebook Gate”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업 규모: Rp 9.3조 (약 USD 5.7억) - 120만 대 크롬북을 7.7만 개 학교에 배포
국가 손실 추정: Rp 1.98조 (약 USD 1.2억)
핵심 의혹: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한 오지 학교에 인터넷 연결이 필수인 크롬북을 배포. 내부 연구팀이 부적합하다고 했음에도 구글의 크롬북을 선정(Gojek은 Nadiem이 대표일 당시 구글의 투자를 받은 바 있음)
2025년 7월, 검찰은 GoTo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습니다. GoTo는 “Nadiem은 2019년 이후 회사와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Gojek - Google - 교육부로 이어지는 의혹의 고리는 여전히 논란 중입니다.
9월 4일, Nadiem은 분홍색 구치소 조끼를 입고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됐습니다. 그는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신이 나를 보호할 것이고,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Fishery, Investree, TaniHub에 이어 Gojek 창업자까지. 인도네시아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든 인물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오르는 전례 없는 상황입니다.
2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